부제 : 돈은 어떻게 세계사를 바꾸는가
A4 절반 정도 사이즈에 약 260 페이지 정도 되는 책에 영국, 미국, 소비에트 연방, 중동, 독일, 일본, 중국, 이라크, EU 등 많은 나라가 등장한다.
세계사의 세세한 부분보다는 큰 사건에 초점을 맞춰 국제 경제의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돈의 흐름을 알면 역사가 읽히고 세상이 보인다.
01. 영국
1200년대 국왕이 임의로 조세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국왕의 임의 과세와 낭비 때문에 국력이 피폐해지지 않았다.
1500년대 강력한 해군으로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무역과 식민지를 빼앗아 대영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이는 강한 영국 해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600년대 잉글랜드 은행 설립으로 안정적으로 저리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이는 영국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졌다.
1700년대 산업혁명을 이루었다.
1800년대 아편전쟁으로 인해 중국으로부터 홍콩을 할양 받았다.
1800년대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파운드와 금의 자유로운 태환(교환)을 보증하였다. 영국은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국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무렵부터 영국 파운드는 기축통화로 자리 잡는다.
1900년대 초 제1차 세계대전으로 경제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02. 10. 미국과 달러
세계에서 세 번째로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 그저 넓기만 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깊고 넓은 강, 금맥, 유전, 광산 등 갖가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당초 서구 국가들이 대항해시대 이후 많은 식민지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자국에는 충분하지 않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나 미국은 이미 갖고 있었던 것이다.
1894년에는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공업 생산국이 되었다.
나름 열강이었던 미국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전의 미국은 신생국, 미개발 지역이 많은 나라, 유럽 국가의 투자금을 끌어모아 개발하는 나라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특수로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 졌던 채무를 소멸시킴과 동시에 오히려 세계 1위의 채권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주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갔다. 당시 미국은 세계 1위의 산유국이었다.
(참고로 중동의 대규모 유전은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전후에 발견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4년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브레튼우즈 협정이 체결되었고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 제도가 실시된다.
미국은 그동안 강력한 경제력으로 대량의 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전쟁 후의 부흥을 미국의 지원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자는 미국의 주장이 관철되었고 세계의 경제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세계대전을 거칠 때마다 미국은 점차 강력해졌다.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다.
미국의 달러는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저와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달러를 찍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기에 빚더미 대국이지만 유지가 가능한 나라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달러가 지닌 기축통화 지위를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하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 그 전쟁 상대가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이었다.
03. 소비에트 연방
제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혁명을 통해 탄생한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
같은 시기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의 영향으로 심각한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전 세계의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동유럽 대부분을 공산권으로 편입시키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라는 냉전 시대를 만든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같은 에너지 자원, 철광석. 금. 동. 니켈. 수은. 알루미늄 같은 광물자원, 풍부한 수산자원,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삼림으로 인한 풍부한 목재 등 막대한 자원으로 동유럽 국가들에게 에너지와 자원을 공급하고 농산물을 얻음으로써 공산권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했기에 냉전은 장기화에 돌입하게 된다.
04. 07. 오일머니와 석유 이권 투쟁
이 부분은 아래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자.
05. 독일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모두 패배한 독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를 모두 빼앗기고, 인구의 10%를 잃고, 영토의 13.5%, 농경지의 15%, 철광석 광상의 75%를 잃었다. 군대는 해체된 것과 다름없었고, 배상금은 거의 330억 달러였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산업 경제는 빈사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독일 경제는 다시 부활했고 순식간에 유럽 최대의 군사 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높은 과학기술까지 보유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이 간신히 독일을 패배시켰다.
불과 4년 후 서독의 공업생산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수준으로 회복되었고 이후로도 급성장을 이룩했다. 1959년에는 GDP에서 프랑스를 앞질렀고, 1960년에는 세계 2위로 뛰어올랐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세계 2위의 공업국이었다. 1800년대부터 공업화를 추진했고 라인강의 수로와 정비된 철도망 등 지리적인 이점과 풍부한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저력 자체가 탁월했으므로, 패전으로 인한 혼란이 사그라지자 단번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전쟁으로 이한 공업 설비의 타격이 심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06. 일본
메이지 유신 시대 규제완화를 통해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했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수출대국이었다. 일본의 주된 수출품은 섬유제품이었는데 이는 영국과 중복되었고, 늘어나는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영국이 수입 규제를 실시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블록경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참고로 일본은 영일동맹의 의무를 핑계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실은 독일의 아시아. 태평양 식민지를 노리고 참전한 것이다. 전쟁으로 피해는 전혀 입지 않고 경제적인 이득만 취했던 일본은 이후 더욱 제국주의에 박차를 가하고 식민지 확장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 불황이 생기고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되자 침략전쟁을 하게 된다.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고 미국과 영국은 중국을 침략한 일본에 석유 수출을 제한하게 된다. 이것이 결국 진주만 습격으로 이어져 태평양 전쟁의 발단이 된다.)
08. 13. 중국 그리고, vs 미국
1800년대 아편전쟁으로 중국은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상하이 등 항구 다섯 곳을 개항했다. 이후 영국 이외의 열강들도 중국에 권익을 요구하였고 청일전쟁에서도 완패하게 된다. 신해혁명을 통해 청 정부가 무너졌고 중일전쟁과 내전에 시달리다가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중국의 공산당 정권을 미국이 승인하지 않자 국제적인 고립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손을 내민 곳이 소련이었다. 중국과 소련은 1950년 중소 우호동맹 상호원조 조약을 맺었고 서방 국가들과는 단절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국은 소련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1990년대 전후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져가는 동안 국가 체제가 붕괴되지 않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후 국경 문제 등으로 소련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고,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지는 등 국제 정세가 변함에 따라 중국은 1979년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게 된다. 이후 경제특구를 설치를 시작으로 외국 기업의 주도하에 중국은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중국은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을 통해 중국 주도의 아시아 개발을 하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가 서로의 최대 수출 상대국이며 현재 중국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09. 냉전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이루어진 냉전은 군사적 대립이기도 하지만, 실은 대단히 커다란 경제 문제였다. 냉전은 결과적으로 미국과 소련으로 하여금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전 세계 각국을 포섭하여 진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했다.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이용해 최대한 지원을 얻어내기도 했다. 냉전 중반 무렵부터 미국과 소련은 재정 위기로 골머리를 앓게 된다.
게다가 서방 국가들은 냉전 한복판에서 거액의 달러를 금으로 교환 요청하게 되고 이는 미국을 더욱 힘들게 하면서 미국은 결국 미국 달러와 금 교환 정지를 발표하게 된다(닉슨 쇼크).
한편 공산주의의 한계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었던 소련 경제는 미국보다 더 엉망이었다. 1980년대가 되자 소련, 동유럽과 서방 국가들의 경제적 격차는 현저해진다. 1985년 취임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서방 국가들과 제휴 및 자본 도입을 추진하고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군사지원과 파병을 대폭 축소한다. 소련은 점점 공산주의 진영의 지도적 입장이 약화되었다. 공산주의를 포기하는 나라가 생겼고, 독립을 선언한 발트 3국을 막지 못했다. 결국 1991년 소련은 붕괴되었고 냉전은 종결되었다.
11. 이라크
1990년 8월 2일, 이라크 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8시간 만에 쿠웨이트 전역을 점령했으며, 일주일 후에는 후세인 대통령이 쿠웨이트 병합을 선언했다.
이란. 이라크 전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이라크가 석유 가격 하락으로 갈등을 빚은 쿠웨이트를 응징한 것이다.
냉전이 끝난 미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점으로 삼아 이라크를 향한 공격을 시작한다. 미국 입장에서 이 걸프전만큼 경제적으로 효율이 좋은 전쟁은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냉전 중에 갖춰둔 무기를 쓰면 되고, 군비는 동맹국이 지출하게끔 할 수 있었으며, 아랍지역의 거대한 석유 이권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냉전으로 피폐해져 있던 미국은 이 걸프전을 통해 완전히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1991년 2월 27일 이라크는 쿠웨이트에서 철수한다. 걸프전은 종결되었지만 이란을 중동의 암으로 여기던 미국은 후세인 정권이 무너져 또 다른 이란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하지만 후세인 대통령은 그 후 반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낸다.
후세인 대통령은 2000년 석유 거래 수단을 달러에서 유로로 변경하여 미국의 역린을 건드리게 된다. 미국은 전쟁을 통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석유 거래 수단을 달러로 되돌렸다. 전쟁 후 후세인 정권이라는 강력한 권력이 사라지자 이라크는 각지에 있는 세력의 불만이 분출했고 테러나 충돌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리고 후세인의 잔당들은 끝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우고, 이것이 현재 세계 최대의 테러 조직이라 간주되는 'IS'다.
IS는 후세인 대통령 시절의 이라크에서 중추 역할을 했던 집단이 만든 조직이며 국가 시스템을 갖추고 탄탄한 수입원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 EU
이 부분은 아래 유튜브 영상을 검색해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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